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와 파가저택 흉터치료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와 파가저택 흉터치료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와 파가저택  흉터치료

  가뭄설화의 예는 박색설화인 춘향설화를 들 수 있고, 홍수설화의 예는 징악설화인 장자못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 장자못설화의 원형으로 주목받는 것이 강원도 태백시 황지읍에 있는 황지(黃池)의 황부자설화인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득한 옛날 황지못 자리에는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인색하고 심술궂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황부자가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노승이 와서 시주를 청하는 것이었다. 황부자는 중에게 시주할 곡식이 없다고 했지만 노승은 가지도 않고 계속해서 염불만 외우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난 황부자는 곡식 대신에 쇠똥을 퍼서 바랑에 담아주었다. 그랬더니 노승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가는 것이었다.
이때 방앗간에서 아기를 업고 방아를 찧던 그 집의 며느리 지씨가 달려와서 쇠똥을 쏟아버리고 쌀을 시주하면서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승은 지씨에게 말하기를 “이 집의 운세는 오늘로 다하였으니 살고 싶으면 나를 따라 오시오”라고 했다. 이에 지씨는 아이를 업은 채로 강아지를 데리고 노승을 따라 나섰다.
노승은 지씨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지씨가 삼척 가는 길인 송이재를 넘어 통리로 해서 도계 구사리 산등을 넘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 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놀란 지씨는 그만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순간 지씨와 아기, 그리고 강아지는 돌로 변해버렸다.
그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미륵바우라고 불렀는데, 바위의 모양이 아이를 업고 뒤를 돌아보는 여인의 모습을 닮아 있다. 지씨를 따라가던 개도 굳어져서 돌이 되었는데, 이를 개바우라 부른다.
황부자가 살던 곳은 물에 잠겨서 땅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그 자리가 세 개의 연못으로 되었는데, 제일 위쪽의 큰 연못은 집터였으므로 마당늪이라 하고, 중간은 방앗간 터로 방간늪이라 부르며, 맨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은 변소가 있던 자리라 통시늪이라 한다.
또한 황부자는 이무기로 변해서 연못 속에 살게 되었는데, 일년에 한 두 번씩 물이 누렇게 되는 것은 이무기가 된 황부자가 심술을 부려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못의 물은 하루에 약5천톤 정도가 솟아나는데, 영남의 너른 들을 적시면서 1300리를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손종흠의 문학사랑중에서-

필자가 보기에 황씨부자는 강상죄를 범해서 집이 연못으로 만들게 된 파가저택을 전설처럼 만들었다고 볼수 있다.
기사를 보니 이완용의 집터를 연못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고려대 한국사학과 조 광 교수는 “역적이 태어난 집을 부수고 그 자리에 연못을 판 것은 조선시대 형벌의 일종으로 ‘파가저택(破家瀦宅)’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파가저택[ 破家瀦澤 ]이란 조선 시대 죄인의 집을 헐어버리고 그 집터에 웅덩이를 파 연못을 만들던 형벌.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위배한 강상죄인(綱常罪人)에 대한 형벌로, 죄인의 처자(妻子)를 노비로 만들고 죄인이 살고 있던 고을의 호(號)를 강등시키며, 그 고을의 수령을 파직하는 등의 형벌이 뒤따랐음. 이외에 범상부도(犯上不道)•능욕수재(凌辱守宰) 등의 형벌을 범한 경우에도 시행하였음.
용례는 강상죄인이란 부모와 남편을 죽이거나 노비가 주인을 죽이고 관노가 관장을 죽인 경우로 재판을 종결하여 정법한 뒤에 그 처와 자녀를 노비로 삼고 파가저택하며 그 읍호를 낮추고 그 수령을 파직한다. ; 綱常罪人<弑父母夫 奴弑主 官奴弑官長者> 結案正法後 妻子女爲奴 破家瀦澤 降其邑號 罷其守令 [대전회통 형전 추단]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3.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조 교수는 1801년 천주교신자 유항검이 신유박해로 처형되고 난 뒤 전주 초남리(지금의 전주시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14-1)의 집터에 연못을 판 사실을 파가저택의 예로 들었다. 정조실록에도 조선후기 문신이었던 김하재가 죽자 ‘가산이 적몰되고 파가저택 되었으며’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은 김자점이 태어난 집을 만고의 역적 집이라 하여 연못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현재는 저수지로 개축돼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고 이 마을을 현재 “못등”이라고 한다.

그런데 몸에서 상처가 생겨서 흉터가 남으면 연못처럼 움푹 파이게도 되는데 이런 흉터가 생기면 응당 치료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집터가 흉하여 대역죄인의 집을 연못으로 만들었듯이 우리 몸에 움푹 파인 흉한 곳을 길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피부의 새살이 차오르는 시술을 해야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치료가 이미지한의원에서 흉터침과 한약 재생약침으로 피부를 자극해 피부가 재생시키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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